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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정보 > 역사/인물]

탐방>광명의 역사인물을 찾아서④> 행동대장의 비참한 말로 - 동암 이발(東巖 李潑)

멸문지화(滅門之禍) 비극의 주인공이 오늘날 광명시 정치인들에게 주는 교훈
이효성 취재국장
승인 16-01-06 14:01 | 최종수정 18-05-28 12:05  
 

광명시는 개청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흥도시이긴 하지만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역사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고,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곳의 뿌리를 통해 지역에 대한 애정을 쌓아가는 일입니다. 

지금은 광명하면 아파트촌을 연상시키지만 곳곳에 수많은 자연마을이 있고, 수많은 집성촌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에 특정 성씨가 왜 많이 살고 있고, 그들이 언제부터 광명에서 살게 됐는지, 그리고 그들이 광명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 그리고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묘에는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격주로 한차례씩 연재를 할 예정이었지만 바쁜 취재 일정 때문에 3번째 연재 이후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틈틈이 부정기적이라도 이 코너는 연재를 계속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구름산 자락에 자리한 이발과 이길의 묘

모든 행동대장들의 전성기는 찬란했으나 모든 행동대장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선조 때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李潑)이 그러했다.

설월리 끄트머리에 위치한 금강정사에서 구름산 숲길 쪽으로 60m 정도 걸어가다 보면 철조망 경계선이 끝나는 길이 나온다. 그 곳에서 산비탈을 타고 70m 정도 올라가면  추운 날씨만큼이나 초라한 묘 2개와 묘비가 보인다.  동서붕당(東西朋黨)이 막 시작되던 선조 시대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과 동생 이길의 묘이다.

이조전랑, 홍문관 부제학,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고, 선조 때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던 동인의 영수 묘치고는 초라하다 못해 궁색하기 그지없다.

이발은 광산 이씨로 호는 동암(東巖)이다. 동서붕당이 본격화된 선조 대에 인사권을 좌지우지했던 이조전랑과 3대 권력 기관의 하나인 사간원의 대사간을 역임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있던 이발은 결국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멸문지화(滅門之禍)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이발은 광명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전남 출신의 정치인이었으나 정여립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자 시체를 거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에 이원익 선생이 직접 이발의 시체를 수습하고 선산이 있는 소하동에 묘를 조성하여 장사를 지내 준 것이다. 묘소가 이발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소하동 설월리에 조성된 연유이다.

▷ 묘비 오른쪽에서 둘째줄에 "홍문관 부제학 이공발지묘", 맨 왼쪽에  "의정부 사인 이공길지묘"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길은 이발의 동생이다.

광해군 대에 와서 이원익의 상소로 이발은 정여립 모반 사건과 연루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신원이 회복된다.

이발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은 서인의 영수이자 정여립 모반 사건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송강 정철의 사감(私憾)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동인의 영수로서 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이조전랑으로 있을 때 동인들을 편파적으로 등용하여 서인들의 원망을 샀던 것도 한 몫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발은 성격이 편협하고 상대 당 인물에 대해 비판하기를 좋아했다. 본래 정철과는 친분관계가 있었으나 동서 당쟁의 한복판에서 서인의 중심인물이었던 정철과 앙금을 쌓게 된다. 또한 당쟁의 중심에서 이발은 과격한 발언과 서인들에 대한 공격을 끊이지 않고 했다.

이발은 정철에 대해 “누나는 인종의 후궁이며, 여동생은 계림군의 처이며, 조카는 선조의 후궁”인 것에 대한 예를 들며 미인계(美人計)로 출세를 도모하는 간신이라고 공격했다.

서인이었던 윤두수의 탄핵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발은 “윤두수의 동생 근수와 그 조카 현은 간사한 자”라면서 뚜렷한 혐의가 없음에도 친족과 인간성까지 들먹이면서 공격했다.

동서 당쟁이 심했던 시대에 이발의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서인들에 대한 공격에 동인들은 환호했고, 환호성만큼이나 서인들의 원망은 커져만 갔다.

정철과의 악연과 관련한 유명한 야사(野史)가 있다. 어느 날 이발과 정철이 골목길에 마주치게 됐다. 이발은 정철의 멋진 수염을 보고는 “간사한 자가 사내  대장부가 다는 수염을 길렀다”면서 정철의 수염을 뽑아 버린 것이다. 정철은 화를 낼만도 했을 텐데 “몇 가닥 남은 수염 그대가 뽑으니, 노부의 풍채가 더욱 초라하구나!”라는 시 한수를 짓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의기양양한 이발이 조모인 신씨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 하자 신씨는 “송강 정철이 차라리 그 자리에서 노발대발하고 화를 냈다면 후한이 없겠지만 웃으면서 지나갔다면 원한을 가슴에 두고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반드시 그 일로 변고가 있을테니 조심하라”라고 일렀다고 한다.

결국 신씨의 예언은 사실이 되어 이발은 정철에 의해 장살(杖殺, 매로 때려 죽이는 것)됐다. 또한 노인과 어린 아이는 장살하지 않는다는 당시의 불문율을 어기고 82살의 노모와 8세의 아들까지 장살하게 된다.

이때의 충격과 원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광산이씨 집안에서 시제를 지낼 때면 아직까지도 고기를 썰면서 “정철, 정철”한다고 한다.

몇 몇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이발을 모함하여 죽인 것은 정철이 아닌 서애 유성룡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당시 정여립 모반 사건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실질적인 책임자는 정철이 아닌 유성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수사의 책임자가 누구이든 서인의 원망을 한 몸에 받았던 이발은 서인들이 수사의 실권을 쥐고 있던 당시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쓸쓸함을 더하는 구름산 자락에 위치한 이발의 묘에 서면 붕당정치의 한 가운데서 행동대장으로 살았던 이발의 비참한 죽음과 관내 행동대장 격인 몇 몇 정치인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기사 참고 : “광명시지”, “디지털광명문화대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 이발의 묘 찾아가는 방법

이발의 묘를 찾아가는 길은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는 것처럼 힘든 여정이다. 일단 금강정사에서 구름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월정사 가는 길 쪽에 구름산 숲길 안내판이 나온다. 표지판이 안내하는 누리길을 따라  60m 정도를 걸어가다 보면 사유지 경계를 표시하는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이 나온다. 철조망 왼쪽은 원래 등산로이었던 곳인데 폐쇄되었다. 바위와 나무로 통행을 금지시켰지만 약간의 운동신경만 있다면 타고 넘어가면 된다. 제지하는 사람은 없다. 길이 끊어지고 잡풀과 가시나무들이 우거진 등선을 따라 70 -80m 정도를 걸어가면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쌍봉과 묘비 및 훼손된 망부석 등이 나온다. 그 곳이 이발과 이길 형제의 묘소이다. 한 때 조선 정계를 주름 잡았던 동인 영수의 묘지 치고는 너무도 초라하여 권력의 허상을 느끼게 한다.

▷ 금강정사에서 구름산 쪽으로 걸어가면 숲길 안내도가 나온다.

▷ 숲길 안내도에서 30m 정도 걸어가면 표시판이 나온다.

▷ 표시판이 안내하는 광명누리길 쪽으로 30m 정도 걸으면 철조망이 끝나고 길을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용감하게 통나무를 뛰어넘어 70 -80m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이발의 묘소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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